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에게

야단을 치려면 제대로 알고 야단을 쳐라

허공을 걷는 길 2009. 5. 21. 10:43

4.어슬픈 무당이 되지마라

 

   2년제 전문대학을 졸업하니 군 복무 일자가 어중간하여 취직이 되질 않는다.

   병무청에 가보니 기술행정병(지원병)제도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군대를 갔다 와야 취직을 할 수 있으니 병무청 앞을 10 여차례 왔다갔다 하다가 지원하였다.

   부모님 모르게 일을 저질렀다.

   집에서 빈둥거릴 수 있도록 여유로운 집안 살림이 아니었기에...

 

   주특기 501(목공)으로 합격이 되었으니 부모도장을 가져 오라한다.

   아마도 군대를 지원해서 간다면 특히 우리 어머니는 까무라치실 것이다.

   왜냐면 아버지가 6.25로 인해 당시 다니시던 학교도 중퇴하고 6.25사변을 치루면서 겨우 살아 오신 분이시다.

   그런데 나 마저 군대를 지원해 가는 사실을 알면 절대 조용히 넘어갈 사항이 아니다.

   몰래 아버지 도장을 찍어 제출하고나니 얼마 안되어 입영 영장이 나왔다.

   모른체하고 영장이 나왔다고 식구들에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어떻게 된 영문인지 따지신다.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신체검사 받은지 6개월도 안되어서 영장이 나오냐는 것이다.

   이왕 영장이 나왔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였다.

   어머니는 눈물바닥이었고 아버지는 어차피 갈 군대 빨리 갔다오는 것도 방법이라 했다.

 

   논산 훈련소 수용연대라는 곳에 가보니 요즘 군대와는 비교도 안되는 시설물,음식 또한 당시에는 수용연대에 있으면

   군 복무일수로 적용을 받지 못하므로 하루라도 빨리 훈련소로 가야만 한다.

   수용연대에서 일주일 정도 지나니 현역병들이 기행병(지원병)을 별도로 집합시킨다.

   내용인즉 목공은 너무 많아 언제 훈련소로 갈지 모르니 집으로 돌아가던지 수송(610) 또는 정비(618)로 주특기를 변경하라 한다.

   그 당시 나는 제대 후 나도 자가용 몰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수송을 택하였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뒤 대구에서 수송교육을 받았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군대의 부패는 극에 달아 있었다.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일들이 있었다.

  그 행위가 너무 더러워 부모님 면회 오지 말라고 사제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수송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 받았는데 군수사 외아부대라 한다.

  부대장께서 나의 병역기록부를 보고 어떻게 목공(501)이 수송(610)으로 주특기가 바뀌었느냐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였더니 일일명령으로 군수시설업무를 보라 한다.

  당연히 내무반 생활은 수송부 내무반에서 하였다.

  수송부는 일이 참으로 험하다.

  그러니 나의 상관들과 동료들은 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시설업무(사무실 업무)만 보았지만

  수송부 동기 및 고참들은 특히 겨울이 되면 자기 차량은 자기가 정비를 다하여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엄청 힘든다.

  

  이등병 시절 정말 인생에서 격지 말아야 할 일을 격었다.

  그 일은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에 나의 결백을 인정받아 무사히 해결되었다.

  그 당시 그 일을 당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며 배운 것은

  나쁜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군 생활은 나의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켜 준 시간이었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나의 욕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는 정말 참회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고통받은 시간에 대하여

   진정으로 사과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라." 

 

  우리 큰 아이가 5~6살때 일이다.

  어느 아이도 마찬가지 겠지만 그림을 그릴때 자기가 좋아하는 색이 있다.

  언제가 크레파스에 자기가 좋아하는 색이 없으니 새것을 사달라 한다.

  그 크레파스를 보니 그 색외에는 아직 쓸 만하였다.

  그래서 나머지 색도 다쓰고나면 사 주겠다 했다.

  어느 날 장인어른께서 오셨다

  외손자가 보고 싶어 오셨다 하신다.

  무엇을 하다가 문짝이 고장이 나서 고치기 위해 공구상자를 찾으려 하는데 아들이 얼굴에 어쩔줄 모르는 표정을 하더니 갑자기

  "아빠 잘못해어요"하고 무엇을 감춘다.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새크레파스라 한다.

  순간 나는 얼마 전에 좋아하는 색이 없다고 새 크레파스를 사달라 하였는데 안 사주니까 훔친 줄 알고

  거실에 장인께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나쁜 버릇은 할아버지의 과잉 보호로 인해 발생되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아이 방을 안에서 문을 잠그고 회초리를 들었다.

  그런데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한다.

  그 아이는 새 크레파스를 훔친 것이 아니고 외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으로 샀을 뿐인데 그래도 아빠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너무 가지고 싶은 것을 삿다는 것이

  그 아이가 생각하는 잘못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셔서 무식한 사위라고 하면서 가버리셨다.

  위에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군 생활하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옳고 틀리고 한것을 여사롭게 넘긴다면 그의 생활은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기에 우리 아이들을 절대 그렇게 키울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나쁜 짓을 눈 감고 넘어가면 자기 평생의 인생을 그렇게 쉽게 살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우리 아들을 그렇게 회초리로 다스렸다.

  그 회초리는 내가 맞았어야 하는데

  밤 늦도록 그 아이의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며

  "철아  잘못한 일이 있으면 무조건 잘못했다 하면 안된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다 하고 너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 하여야 너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단다.아빠는 그렇게 살아 왔기에 지금 너 앞에서도 당당하단다."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기 전에 대화로서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였는지 물어보고 대답을 않는다면 부모가 잘못한 점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를

  한다면 부모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을 사전에 대화로서 풀 수있기 때문에 오해로 인한 자식과의 거리는 좁혀줄 수 있다.

  특히 요즘은 대부분 가정이 맞벌이 가정으로서 가족간에 자식과의 대화가 절대 부족하다.

  틈새 시간을 내어서라도 대화를 많이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