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한 나의 이야기(내가 어디서 왔는가? 2)

허공을 걷는 길 2008. 6. 28. 11:52

요즘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을 보면 약간의 걱정이 된다.

우리가 어렸을 때 생활한 상황이 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 말이다.

 

요즘은 풍부 속의 상대 빈곤이지만

내가 성장하던 시절은 절대 빈곤이었다.

너 나 할 것없이 모두가 배고픈 시절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유괴범이 그때는 옷을 잘 입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옷을 뺏아가곤 하였다.

그 당시 유괴범과 요즘 유괴범은 질적으로 틀린다.

그 당시 유괴범은 노모가 아파서 병원비를 만들려고

                        사랑하는 처와 자식이 굶고 있어 병들어 누워 있을때 그 생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 하였다.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요즘도 그러한 아이들이 있다 들었지만 그 당시 도시락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아이들은 60명인 1반에 10명 내외 였던 것 같다.

그래서 정부에서 미국에 식량원조를 받았던것 같다.

요즘으로 치면 사료로 사용하는 옥수수가로 같은 것 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옥수수빵(요즘 빵집에서 파는 옥수수빵이 아닙니다)을 1게씩 주다가 그것조차 모지랐는지 나중에는

옥수수 죽을 주었죠.

지금은 고위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바로 내 바로 아래 동생의 이야기이다.

나는 학교가서 옥수수빵이라도 얻어 먹었지만 바로 아래 동생은 그것조차 못먹었던것 같다.

그래서 하루는 학교에 나를 따라가서 내 자리 옆구석에 쭈구려 앉아 점심시간 될때 까지 기다렸다

옥수수빵을 한조각 얻어먹기 위해............

4시간 수업시작 하려 하는데 할머니가 내 동생을 찾으러 왔다.

할머니 한테 엄청나게 혼나면서 집으로 끌려갔다.

조금만 있으면 저 옥수수빵을 얻어 먹을 수 있는데 하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담인 선생님께서 묻는다 

왜 그리하였느냐고...

사실 대로 말씀드렸다

수업 마치고 집으로 발길을 옮기려 하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부르신다.

신문지에 무언가를 싸서 주신다.

옥수수빵이다.

동생과 할머니에게 갖다 드리라고...................... 

그럭저럭 우리가족이 살만 할 때 쯤이다

이종 동생하나가 너무나 철없는 소리를 하기에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왜 바보같이 그리했느냐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 하길래 쓴 웃음만................

불과 10년 차인데 이렇게 생활이 생각이 바뀐 세대가 되어 버렸죠.........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잘 만든 그 한마디

"배가 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배가 고픈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자주쓰는말 중 하나가 "Hungry 정신"이 아닌가 싶다.

절대 빈곤,절대 비교 등.......

요즘 가끔 기하 체험을 하지만 그것은 풍요속에 기하 체험이기에 '이해를 할 필요도',' 할 생각도 안한다'

단지 Event성 일 뿐인것이다.

그 한 마디로 직장생활 하면서 발주처에게 참으로 많이 썼든 말 중에 한 구절이었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직장생활하면서 이 정도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