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작장생활 손자병법

꼰대의 직장생활 손자병법

허공을 걷는 길 2022. 6. 16. 12:49

군복무 시절 - CID,수도군단 그리고 군수사령부

자대배치 받으니 부대장(여기도 역시 대령이 부대장이였다)이 신참들을

개개인을 면담하였다.

난 병역기록부에 주특기가 2개로 적혀 있었다.

하나는 501(목공) 하나는 수송(610)

이상한지 물어보다.

"자네는 왜 주특기가 2개지?"

지원 주특기와 훈련소에서 바뀐 주특기를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그러니 잘 되었다며, 당장 일일명령으로 시설업무를 보라 하신다.

당연히 수송부에서는 못마땅해 했다.

내무반 생활은 수송부에서 하면서 근무만 시설업무를 보니 자기네들 보다

편한 생활을 한다고 동기들 조차 나를 왕따시키곤 했다.

그러나 보니 눈치가 늘어 그날 밤 기합이 있는 날이면 "야작(야간근무)"한다

하고, 모두가 취침할 때 쯤 내무반으로 들어갔다.

왜냐면, 군 부대내 시설물도 설계하여 육본에 허가받는 도면이 필요하였기에

식당 확장,화장실,목욕탕등 시설물 설계를 내가 하고 검토는 군수시설과장

(대위)이 한 후 육본에 제출하기 때문에, 나의 업무 역시 만만찮은 업무였기에 수송부에서는 뭐라고 이야기 못했지만, 고참들의 눈에는 아주 거슬린 것

이었다.

수송부에서 필요한 자재들은 내가 시설업무를 하니 군수시설과장도 쉽게 허락해줘, 덕도 보았지만 그래도 수송부 고참들은 이런 내가 당연히 못마땅 할 수

밖에 없었다.

고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기합은 항상 내가 내무반을 들어 오면 그 시간 부터 기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시설업무를 본지 얼마되지 않은 싯점에 자재를 담당하던 사수가 제대를 하게 되어 내가 자재업무까지 보게 되었는데, 사수가 제대한지 얼마간 지난 뒤 군수 시설과장이 자재대장을 가져오라더니 장부조작을 시켰다.

그것은 하면 안되는 것이었지만,이등병이 육군대위가 시키는 업무를 "그 업무는 부당하니 못하겠소"하고 대응하여야 했었는데 그걸 못한 탓으로 톡톡히 그 댓가를 치루었다.

그 어디에서도 부당한 일을 시키면,장소,이유 불문하고 그 상대가 누구든간에 거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아 써가면서 그에 대한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모두가 잘 대응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특수한 상황에서는 괜찮겠지 하는 어리섞은 내 판단으로

행동을 하므로서, 그에 대한 댓가를 억울하게 당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 똑바로 차려서,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 직장생활 손자병법

그 뒤 얼마 지나서 나는 재고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호출이 왔다. 사무실에 가보니 양복입은 몇 명이 나에게 묻는다.

"이 장부 당신이 고쳤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예,그런데요" 하니 그 다음 양복입은 사람의 우두머리가

"야! 이 새끼도 실어"라 한다. 난 갑자기 당한 일이라 무슨 일인가하곤 찝차에 올라 탔다.

그 좁은 찝차에 위병장교 중사,군수시설과장,그리고 나

그 찝차는 서울로 들어서길,래 나는 아무 생각없이 서울의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느 건물에 도착했다.(그 당시 육본 건물이었다)

그리곤 곧 바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들어가는 주변에은 그 당시

수사반장 드라마의 건물 내부처럼 주위에 빨간 불들이 돌아가며 번쩍거렸다.

내가 도착한 지하실에는, 일제시대 독립군 고문하는 일제 경찰 고문실 같았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한참 동안 있으니, 군인도 아니요, 민간인도 아닌 신체가 좋은 두 명이 츄리닝에 슬리퍼를 끌고 오면서 내게 묻는다.

'야! 이등병 너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모르는데요"

"얀마 여기는 낮에도 별이 떨어지는데야"

난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당췌 이해를 못했다.

"너 호주머니에 있는 것 다 내놔"

당연히 내 호주머니에는 육군 암기 수칙 수첩,코 묻은 손수건, 그리고 내가

그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 사진이 전부였다.

그러니 날 더러 숨기지 말고 다 내 놓아라는 것이다.

무얼 요구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군수물 자재를 군수시설과장과 작당하여 빼돌리고

별도로 관리하는 장부를 내놓아라 뜻이었다.

당연히 그런게 없었고, 사전에 군수시설과장이 내게 귀뜸도 없었기에, 그냥

당하여야 만 했다.

처음에는 이등병이니 사실대로만 이야기하면 그냥 풀어주겠다 한다.

그런데 내가 뭘 알아야지 이야기를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러니 조금 있으니 "이등병놈이 교육을 잘 받았네" 하면서 날 더러 여기가

어딘줄 아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모른다고 밖에 대답할 수 밖에

"여긴 육군 범수단이야. 범수단이 뭣한데 인줄 몰라?

"예","그럼 CID는 들어봤어?","예", "여기가 CID, 육구범죄수사단, 낮에도

별들이 떨어지는 곳, 즉, 장군들도 여기 잡혀올 때는 불명에제대 이등병으로 강등 제대 시키는 곳이란 말이다. 그러니 곱게 이야기 할 때 곱게 다 털어놔."

근데 내가 뭘 알아야 이야기를 할텐데 아는게 없으니 몸으로 곤역을 치루었다

처음에는 꿇어 앉으라 해서 꿇어 앉으면, 양 다리 무릅 사이로 야전 침대에

사용하는 각 목을 끼워넣어 덩치두 놈이 양쪽에서 굴린다.

그러면 어지간한 무릅은 다 나가는거지.

그런데도 몰라서 모른다 해도,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 하며,비행기 태우기,

즉, 거꾸로 매달아서 콧구멍에 물 붓기,그 다음에는 최악인 잠 안재우기, 눈에 썻치 라이터를 켜놓고 계속 묻는다.그러곤 구타의 연속 행위, 모른다 대답해도 지네들 끼리 뭐라 뭐라 하는데 며칠, 지나니 눈은 아픈데 잠도 못자고 정신만 몽롱해진다.

그러다 좀 있으니, 나의 손가락 10개를 어딘가에 찍어된다.

그러다 그곳을 나오니 자대 수송관으로 새로 왔다면서, 내가 진술한게 사실이냐 고 묻는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 고문 당한 내용만 이야기하고 난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고 밖에 대답했다고 답하니, 그럼 왜 그 조서에 지문을 찍었냐고

묻길래 나는 내 스스로 지문을 찍은 사실도 없다고 했다.

내가 그곳에서 지낸 시간이 일주일이었다 한다. 난 몇 년 지났는 줄 알았다.

그 정도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그러자 새로 부임했다는 수송관은 전에 보안부대 있다 왔다면서 다음은 수도군단으로 이첩되는데, 그때는 내 옆에서 지켜줄 테니 똑바로 이야기 하라한다.

그 뒤 수도군단에 이첩되니, 수송관이 내 옆을 지켜주면서 내가 진술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수도군단에서 수사하는 놈은, 날더러 그럼 왜 이 진술서에 지문으 찍었냐며 또

그 자리에서 구타를 당했다. 그러나 CID의 고문에 비하면 약과였다.

수송관 이야기에 의하면, 처음 조서의 양이 수도군단에서 다시 꾸미니 2/3로

내용이 줄었다 한다. 자대 복귀 뒤 한달 쯤 지나니, 부산 군수사령부에서 군사재판하기 전에 조서를 꾸며야 한다고, 세명이 같이 부산에 가게 되었는데,

군수시설과장은 우리 집이 부산이니, 하루 신세 좀 지자해서 그러자 했다.

난 우리 집에 갈 수있어 좋았기 때문이지.

집에 가니 아버지가 갑자기 무슨일이냐고 묻는다. 그러니 군수시설과장이

부산에 업무차 같이 출장왔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 이지만 헌병생활

부터, 군 생활 오래한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가 아니셨다.

다음 날 군수사령부로 들어갈 때 까지 아버지는 날 미행을 하시고, 오래 같이 군 복무를 한 아버지 친구께 내가 간 곳에 대해 알아보시고는 내가 크게 무언가가 잘못 됐다는 것을 아셨다 한다.

사령부 법무팀에 가니 그 법무관이 날 불쌍하게 여기는 것같이 느껴졌다.

더더구나 부산 동아대 법대 출신이라며, 날 애처롭게 본다. 처음에는 토끼뜀

열번하라 하는데 3번 정도하고 그냥 쓰러졌다. 처음에는 그것도 못하냐며

화를 내는 척하는게 내 눈에 보였다.

그래서 CID,수도군단의 만행을 이야기하였더니 오히려 그들에게 욕을 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등병 신분은 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설상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이 정도는 너무 심했다며, 점심을 자비로 사주곤 그냥 참고인 조서만 꾸몄다.

그 법무관이 혹시나 부를지 모르나. 아마 안부르기 쉽다며 난 여기까지가 끝이라 하여, 남은 군 복무를 잘 마치라고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전에는 아무도 그런 소리를 해주질 않았기에 만약에 내가 남한산성에 가게 되면 자살까지 각오한 상태에서 이젠 끝났구나 하고 복기하였다.

두 사람은 CID 같이 간 뒤, 그 뒤는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