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작장생활 손자병법

꼰대의 직장생활 손자병법

허공을 걷는 길 2022. 6. 16. 12:46

군 복무시절 - 훈련병 시절

삼성중공업 입사 시 창원 1공장에서 면접시험을 봤다.
다른 면접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말 한마디는
영원히 잊을 수 없었던 순간 재치였던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말 안 좋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도 잘
견디면, 나중에는 그게 내 인생에 있어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 직장생활 손자병법

내가 군대는 입대일자가 어중간해서 학교졸업후 6개월동안 제대로 된 회사는취직을 할 수 없었다.
어느 직장이든 신입사원이 제대로 회사 업무를 나름 이해하고,활용할 수 있는 싯점이 3~6개월이다.
그래서 대기업은 신입으로 취업하년 3개월간은 수습사원이라 하여 본 봉의7~80% 수준으로 지급한다.
대한민국 남자들 치고 군대가기 좋아하는 부류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졸업 후 집에서 빈둥되면 부모님의 눈총이 더 따거워 군대를 먼저
갔다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버지는 6.25 참정 용사로서 어머니는 군대생활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이시었다.
그렇지만,요즘 군 복무 신체검사기준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시력이 -0.09 였다.
그런데 1급 갑종이라 한다.
난 시력이 이렇게 나쁜데 어떻게 1급 갑종이냐 따졌더니 교정시력이 1.0이라 1급 갑종이라 한다.
에이 어차피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 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였기에,
아버지의 눈총도 피할겸 어차피 하여야 할 일이라면 당겨서 하자.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났다하더라 라는 생각으로 병무청 앞을 10번 서성거리다가 11번째 눈 질끈 감고 주특기 목공(501)로 지원,당당 1등을 차지했다. 그 때 판정관이하는 말이 난 그 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자네는 자대 배치되어도 주특기는 변경이 안될거야. 잘 갔다 오게"하신다.
그낭 성적이 좋아서 그런 소리를 하나보다 했다.
그런데 논산 훈련소에 가서야 그게 무슨소리인줄 알았고, 사무실과 실무는 전혀 딴 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논산 훈련소에 갔을 때는 수용연대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자기
주특기의 TO가 나올 동안 대기하는 장소다.
그런데 그 당시는 여기 머무는 시간은 군 복무시간으로 보지않고, 그냥 시간만
좀 먹는 곳이었다.
수용연대 25일 째 되는 날, 기관병들이 기행병(지원병)들을 집합해서, 어디로 데려 가더니, 아마 행정을 담당하는 장교였단것 같다. 그 장교는 지금 우리의
주특기 TO가 없기 때문에 귀향을 하던지, 주특기를 바꾸어 자대로 배치 받아라는 것이었다.
수용연대에서 15일이나 지내다 귀향하는 것은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에 어떤
주특기로 바꾸어야 되는지 물어보니 610(수송),618(정비) 둘 중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였다.
이 때도 순간의 판단 실수로 내가 어려울 때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순간이었다.
당시 618을 택하였다면 지금쯤 나는 자동차 정비업체 사장이 되너 정년을 걱정하지 않고 계속 사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어떤 기회가 오면 순간 판단을 하지말고 나의 긴 여정에서 어떤 기회가 오면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좀 더 깊게 생각해서 결정을 하여야 한다 : 직장생활 손자병법
그렇게 시작된 논산 훈련소 훈련병 시절, 군 입영열차 앞에서 친구들의 격려와
충고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훈련소로 갔다.
제일 먼자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난 키가 큰데에다 나름 덩치가 있으니 훈련소에서 향도를 시킬것이다. 그럼 절대하면 안된다. 향도를 하는 순간 훈련소를 떠나는 날까지 괴롭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소대장이 날 더러 향도를 하라 하여 친구들의 충고대로 안한하여 그 날 몽둥이 찜질로 엉덩이 살이 다 터져서, 그 날 밤 훈련소 내무반에서는 소대장의 지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밤새도록 불침번들이 돌아가면서 안티푸라민으로 엉덩이를 맛사지해주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겨우 겨우 훈련을 받았지만.
그외에도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훈련소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훈련은 항상 야외교육장에서 하였는데, 새벽 일찍 출발하여, 다른 소대보다
항상 늦게 도착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미친갤라 불르는 소대장 덕분에 이동과정에서 몇번을 뒤로 갔다가 다시 야외교육장으로 구보를 했다.
그 와중에 그 달시 훈련병들의 식사는 요즘과 달리 정량 식사라 하여 항상 배가 고팠다.
한번은 얼른 밥을 먹고 식기르 씻어 모른 척하고 한번 더 배식 받으려다 조교
한테 걸렸다.
당연히 짠밥과 반찬들은 많이 남아있었다.
조교가 하는 말이 이 남은 짠밥을 다 먹으면 그냥 넘어가겠다 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 다 먹겠다 했다.
그렇지만 난 소가 아니였기에, 당연히 다 못먹어서 기합을 많이 받을 줄 알았으나, 조교가 불쌍하게 여겨 그냥 가라하여 그 날은 무사히 넘어갔다.
이런 일도 훈련소에서의 아득한 추억거리로 남는다.
항상 무슨 일이 생기면 뒷감당할 생각도 하면서 하여야겠지만,
아주 가끔은 과감한 정공법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쉽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떤 일에 부닥치면, 너무 몸을 도사리지 말고 과감하게 행도해 보는 방법도 괜찮다. : 직장생활 손자병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