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맙소

허공을 걷는 길 2020. 3. 24. 13:47

미스터 트롯을 보면서 가슴에 눈물이 흘리도록 하는 장면과 곡이 있었다

김호중의 "고맙소"

김호중의 인생을 이끌어준 은사와 그에 보답하는 인생음악 선정한 "고맙소"가 나를 울린다.


난 왜 저런 생각을 못했을까?

왜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못했을까?


나에게도 지금의 내가 있도록 해주신 분이 한 분 계신다

고 3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박 찬성선생님'


내가 힘 들때 해주신 말씀

"진아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는 내가 어디에 있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인생의 최후 승리자다.

그러니 어디 서 있던 거기서 최선을 다해라."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선생님을 찾을 때는 이미 기다려주지 않고 떠나셨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또 한 분

전문대학 다닐 때 그냥 그냥 살 때지만 집에 가면 점원노릇하는 것을 아신 학과장님은

학과장님 담당 교재는 Sample로 들어오는 책을 나에게 주셔서 나름대로 도와주셨고

한 학기 등로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주셨다.

아버지한테 이야기해도 믿지 않았지만 난 당당하게 장학금을 아버지께 보란듯이 드렸지


한번은 집에 오셔서 아버지께 이러신다.

"진아는 온실속에 큰 꽃이라 사회에 나가면 시들기 쉽기 때문에 제가 사회교육을 좀 시키겠습니다"하고 데리고 나가셨지

그런데 그 날 저녁 늦게 술에 완전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어서야 집에 왔다.

아버지 : 사회교육 사킨다더니 술꾼을 만들려는 모양이네

아버지는 아주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학과장님이 자기 아들을 사회교육시킨다는데 뭐라 할 말이 없으셨지

술내게 유일하게 술을 가르켜 주신 분

당시는 통금이 있을 무렵

항상 통금시간 다 되어서야 집까지 데려다 주시고

학과장님은 항상 "잘 자라 내일보자"하고 가신다 

학교 가보면 한번도 과음으로 인한 결근,휴강은 없으셨지

하루는 학과장님과 아버지와 마주치게 되자 아버지 하신 말씀

"오늘은 좀 일찍 데려다주이소"


"아! 예 잘 알겠습니다.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일찍 돌려 보내겠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통금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런데 통금에 걸리지 않고 집에 잘 돌아왔다.

아버지가 한 말씀하신다.

"참 일찍도 온다."

그 뒤부터는 아버지가 학과장님을 봐도 눈 인사만 하시고 아무 말씀 안하셨다

직장생활하면서 학과장님께서는 하교를 그만두시고 건설회사 임원으로 일 하실때 나와 마주쳤는데

"갑"과 "병"관계로 만났다

물론 난 "병"이지만 대기업에 다녔고 학과장님 비록 "갑"이라도 중견건설회사의 임원으로 계셨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학창시절도

생각나서 술 대접하려하였으나 한사코 거절하셨다

그 뒤로는 보지 못했다.

"전 세진교수님"

고맙습니다.


두 분의 은사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올 수 있었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잘 성장한 아들과 딸과 잘 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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