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30여년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허공을 걷는 길 2012. 4. 8. 13:12

사랑하는 아내 미정

 

이젠 그 매섭던 동장군도 서서히 물러가며

봄 아씨의 심술궂은 샘바람이

나를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잠시나마

장난치려는 날씨이구나.

나는 항상 건강하고 식사 잘하고

여하튼 난 잘 지내고 있다.

보고싶고 깨물고 싶도록

그리운 우리 여보는 어떻게 지내는지

 

학교도 열심히 다닐테고

공부도 열심히 할테고

엄마노릇 아내노릇 한다고

많이 바쁘고 고생하고 있겠지

그러다 보면 짜증도 날 수 있을테고

응석(?)을 못부려서 어떡하지

귀여운 내 여보야^^

 

사랑하는 내 아내여

먼 객지에서 그리운  여보에 제일 큰 부탁이 있다.

이 부탁은 꼭 들어주어야 한다.

그게 뭔지 궁금하지

 

그게 뭔가하면   응--

세끼 밥 꼭꼭 챙겨먹고

돼지처럼 뚱뚱해져도 항상

이쁘하고 사랑해 줄테니

제발 세끼 밥만은 꼭 좀 먹어다오

이건 약속해야돼  알았지--

 

그리고 커피는 가능하면 먹지말고

몸에 좋은 것만 먹어라 자기야

알았지-- 약속

 

여기 여직원이 새로 또 들어왔다.

Miss 박이라고

나이는 24세

충신대 야간으로 다닌단다.

그런데 너무 팍 삮았어.

여기오는 손님들도 처녀같지 않다는 둥

말이 또 많구나. 

 

난 아마도 서울에서는

여자 복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 "철"은 좀 어떤지 궁금하구나.

전에 왔을 때 좀 더 부드럽게 해 주지 못한게

마음에 걸리지만 아빠의 마음을 크면 알겠지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잘못하다가는 부자 정이 너무 서먹서먹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미안하자만 자꾸 부탁해서 안됐지만

모자 지간 만이라도 푸근하게 해주기 바란다.

 

전번에 처가집에서 보내 준 쑥 찜질기 덕택에

많이 나아진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만 앞서고 언제 제대로

못난 사위 탈을 벗으까 조급한 마음이 앞서구나.

좀 더 나은 생활이 하루 빨리 와서

맏사위,맏며느리 노릇을 하고,하게끔 해주게 하는게

나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이 들어.

 

좀더 아내를 편안하게 못해주는 남편을 그래도 믿고

살아가려는 그 정성이 다 어디로 가겠니

하늘이 아고 땅이 다 아는 사실이니

정말 자기는 나의 인생 최종 반려자라고 그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있으리--

 

난 "미정'과 "철"의 밑거름이 될테니

백합처럼 우아하고

장미처럼 향기로운

우리의 사랑의 꽃을 꼭 피울테다--

 

 

나는 한 조각의 돌뿌리였으나

나는 한 여인의 사랑에 의해

나는 한 조각의 예술품 조각

나는 어느 하루도 슬퍼하지 않겠네

나는 진정코 장미보다 백합보다

우아한 조각이 될테니

 

그리운 아내여 그럼 다음에 다시 소식 전할께

 

 

 

[1986년 서울 서초동 철골공사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