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30여년

신혼 시절은 없었다.

허공을 걷는 길 2010. 4. 14. 16:22

결혼 휴가 2일만 지나면 우리의 고유 명절 설이다.

얼렁뚱땅 2일 월차 내려고 회사에 전화를 하였더니

"그냥 집에서 영원히 편안하게 쉬어라"는 우리 과장님의 협박에 놀라 그 다음 날 부랴부랴

창원으로 내려갔다.

신혼 집은 부산인데...............

 

우리 부부의 비극은 그때 부터 시작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창원에서 부산으로 내려 가면 그 녀는 항상 퉁퉁 불어 있었다.

결혼 후 신랑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어야 하는 데 그것도 잘해야 한달 30일 중 6일 밖에

같이 있지 못한다.왜냐면 주말 부부였기에............

일이 바쁘면 그나마 6일도 같이 지내지 못했으니................

 

요즘은 주말 부부하더라도 최소한 8일은 볼 수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떨어져서 살지도 않을 것이고 나의 아들도 결혼하면

형편되는 대로 집 한칸 얻어서 내보내려고 생각한다.

아니 차라리 외국에 나가서 자리잡고 편안한 생활을 하였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부모가 보고 싶을 때 찾아 올 수 있는 마음이 생기도록..................

 

나도 아들이지만 내가 홀로 계신 아버지께 하는 것 보면 아마도 당연한 사실로 될 것 같다.

세월이 그렇게 변하기 때문에.......................

 

한번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우리 방으로 가자 한다.

집에 마침 아무도 없으니 속 이야기를 다 한다.

결혼하기 전에 나도 모르는 약속을 우리 부모가 그녀에게 한 것이다.

결혼만 하면 장모님이 편찮으시니 1년 정도는  처가집에서 지내고 다니고 있던 직장도 다니게 해 주겠다고 ...........

그런데 결혼 후 그 약속은 이미 결혼식 하는 순간 다 잊어버리고 그 녀가 잘못하는 것만 몰아 세운다는 것이다.

참 이럴 때는 아들로서의 입장이 어렵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그래도 장남으로서의 우리 부모 편에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만나면 서로가 반갑고 달콤하여야 할 신혼  3년이란 긴 세월 동안 거의 부부싸움으로 보내었다.

심지어는 내 입에서 거침없이 이혼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현명하여 그 말에 대해서는 일체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 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름대로 머리를 쓴게 아버지에게

"아버지 회사에서 사택 규정이 결혼한 사람은 독신료에 살 수 없다 합니다.

 그래서 월셋방이라도 구해서 살림 차리겠습니다."

당연히 부모님들께서는 내가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우리집 형편이 전셋집을 구해 줄 형편이 아니었는 지,아니면 괘씸했는지

"그럼 너 마음대로해라"하셔서

우리는 야밤도주는 아니지만 부모님,시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났다.

13평 주공 아파트에서 제일 작은 방하나를 월세로 얻어서 들어갔다.

처음에 집 주인은 우리가 동거 하는 줄 알았다 한다.

왜냐면 그 좁은방에 살림살이를 가져올 수 없으니

그 당시 간이 옷장(그 당시 용어로서 비키니 옷장)과 전기곤로,냄비,숫가락,젓가락,작은 상 하나가 우리 신혼 살림의

전부였으니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알 수 밖에.......

 

일반 사람들의 상식으로 신혼부부가 저렇게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할 수 밖에.....

그렇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그런데 아버지가 우리가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하셨는지 와 보니

창피하신지 방 1개짜리 전셋방을 구해주셨다.

그러나 그 달콤한 시간이 길지를 못했다

  

회사에서 상사와의 불화로 설계업무를 하다가 그 상사를 괴롭힐 방법은

현장 근무밖에 없었기에 현장업무를 하기러 마음 먹고

공사부의 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좋다 하셔서 공사부 부장의 도움으로 

3개월 동안 인사부서,설계부서와의 싸움에서 내가 원하는 공사부로 오게 되었다.

 

공사부로 옮겨서  항상 서울로 지방으로 공사현장 업무를 책임지고 다니다 보니 그 나마 한달에

한번 그 녀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와야 볼 수 있었다.

갓난아이인 우리 큰 아들을 업고 서방이 고생한다고 집에서 음식을 잔뜩해서 양손에 들고......... 

 

요즘 세월에 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를 할 수 없으며 왜 바보같이 그렇게 살았느냐고 이야기 하겠지만

그게 나의 운명 인것 같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앞만 보고 뛰었다 이를 악물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제 준 황혼기에 들어선 우리는 신혼 때 보다 상대를 더 사랑하며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 때 그 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할 수록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 와중에 내가 힘들 때 장모님께서 돌아가셔서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장모님 생각이 더 많이 나기도 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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