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작장생활 손자병법

꼰대의 직장생활 손자병법

허공을 걷는 길 2022. 7. 10. 18:22

두마리 토끼는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건설현장 파견 근무하던 시절.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올 수 있었다.

매월 결산 및 하도급업체 기성처리 및 현장경비 정산등의 이유로 한달에 한번 집에오면 이틀정도 머물다 현장복귀하다

보니 가족과는 항상 아쉬움만 남긴채 나는 또 현장으로 복귀할 때면 아내도, 아들도 너무 아쉬워하곤 했다.

당연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나에게는 뚜렷한 삶의 목표가 있었다.

나처럼 어렸을 때 가정형편으로 친척을 비롯한 부유한 집 아들의 자전거 한번 타기위해 가방도 들어주고,숙제도 대신해

주고, 더더욱 친척들의 멸시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인해 항상 문제아 취급을 받는 행동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 아들에게는 절대 그런 일을 격게할 순 없었다.

지금은 아들,딸 둘인데 아들과 딸의 나이는 9년 차이가 난다.

왜냐면 아들이든 딸이든 아이 한 명만 낳아서 내가 모든 사랑,경제적 지원을 몰빵하고 싶었다. 그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이 키우기 위해.

그러다 막내 딸을 낳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그래서 아들은 왕자님처럼, 딸은 공주님처럼 키우다 보면 나의 삶의 보람이 이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나름대로 난 경제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고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현장 파견생활을 하면 월급과 파견비가 따로 나온다.

그나마 파견비를 조금이라도 아껴 가정경제에 도움을 준것 같았다.

그럼 작은 월급중에서 나로 인해 나가는 돈은 월급에서 한푼도 나가지 않고,월급 전부를 가정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 낙이 난 제일 좋았다.

아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경제적인 측면으로 그 누구에게 손가락질 받게 하는 것은 죽어도 할수 없었기에, 난 더욱 깡다구로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 참으로 많겠지만 두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 사건은 우리과 여직원이 내게 들려 준이야기이다.

아들이 아마 6살때 일인 것 같다.

난 서울에서 현장 파견근무를 할 때, 회사에서 어린이날에 현장 파견자 아아들에게 사장님께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보라 했단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데 우리 아들 편지가 기억이 남는다며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사장님. 우리 아빠 출장 좀 그만가게 해주세요'

이 간단한 문장이 우리 여직원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아서 전달해주는거라 했다.

처음에는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난 그럴수록 더욱 더 아들에게 하나를 빼았으면,하나는 분명히 돌려주리라 한번 더 다짐

했다.

그게 내가 더 악착같이 살아가게 했다.

두번째 사건은 내가 설계근무할때 꼴같잖은 상관과 대판 싸우는 바람에 대리 진급이 3년이나 늦었다.

내가 인사과장과 싸워가며 공사관리팀으로 부서를 옮겼다.

그리고 난 당시 건축기사 자격증도 있었기에 현장에 나가면 내 자격증으로 항상 현장대리인 겸 현장소장 일을 해왔다.

왜냐면 자격증 수당도 더 받을 수 있었기에.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때 일인데 아마 자기 친구아빠 중 부장이 있었나 보다.

그 당시나 요즘도 같은걸로 알고 있는데 지네 아빠가 부장이면 아들도 학교에서 부장,아빠가 사원이면 아들도 사원이였지

아들이 "아빠 부장이 높아? 대리가 높아?" 하고 묻는거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지네 아빠가 부장이라고 개폼을 잡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난 아들의 기를 죽일수 가없기에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다.

"아빠는 대리여도 그냥 대리가 아니냐. 회사 사장님 대리인 현장대리인이야. 현장에서 사장님 대리인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보통 대리와는 다르단다."

아들이 이 이야기를 학교에 가서 자랑을 하였는지,아니면 가슴앓이를 하였는지 난 잘 모른다. 그 뒤에 아들이 그 이야기

에 대한 뒷 이야기가 없었기에......

아마도 알았겠지만.

그래서 난 더욱 더 악착같이 성공하고 싶었다. 악착같이.

이제 돌아보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냥 설계부서에서 근무하였으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니면 설계에 계속 근무하였어도 부장으로 정년퇴직할 수도 있었을 수 있었겠지.

그런데 후배들을 보면 나처럼 다른 부서로 이동한 친구들은 부장까지 근무하였지만 대부분 중간에 회사를 다 떠났다.

오늘부로 '꼰대의 직장생활 손자병법'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생이란 여행을 하다보면 갈림길이 중간중간에 나온다. 두 갈래길

그 두 갈래길에서 방향은 내가 선택하여야 한다.

선택을 하지 않을 수없다.

계속 여행을 하려면.........

가정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출세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은 당신이 선택하여야 한다.

당신 인생은 핸들은 당신만이 운전할 수 있기에..... : 직장생활 손자병법

그동안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안 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