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결혼 운도 좋았다.

허공을 걷는 길 2016. 8. 27. 09:38

SS 중공업에 입사 후 하는 일은 당시 회사공장 건설과 수주를 동시에 하였기 때문에 쌓아놓은 Know How나 실력이

없었든 시절이다.

회사가 기술 축적을 위하여 일본과 합작한 중공업회사들의 설계도면을 사와서 베껴 우리 것으로 만들고 하다 보니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고 상사로 부터 욕도 많이 먹었다.


그 당시만 해도 조금만 경력이 있으면 서로 서로 경력사원들을 기존 회사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우대해주고 데리고 갔다.

그러다 보니 이동 인력도 많았다.

심지어 어떤 경력 사원은 작업복 안에 사복을 입고 와서 상관과 대판 싸우고 그 자리에서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사표를

내고 경쟁사로 이직한 경우도 있었다. 


나의 왼쪽 손가락에는 반지가 항상 끼워져 있었다.

그 반지는 우리 삼형제가 같은 날 동시에 장학금을 받았다.

아버지는 살림은 어려웠지만 삼형제에게 기념으로 금반지를 다 해주었다.


우리는 설계를 할 때 삼각자,각도기를 한번에 사용할 수 있는 Draft를 이용하여 설계하였다. 

그러므로 항상 왼손은 Draft를 잡고 입기에 눈에 잘 뛴다.

하루는 과장님께서 물어본다

'결혼했어요?

'아닙니다",

'그럼 약혼했어요?'

'안했습니다'

'그럼 그 반지는 무슨 반지입니까?'

한참 머뭇거리다 '전문대학 다닐 때 학교에서 용돈을 주어서 반지를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더니 한번 더 나를 본다.

그 과장님 역시 한양대학교 건축과에서 그 분의 동기들은 다 알 정도로  억측스럽게 공부를 하신 분이다.


그 당시 회사에서도 기술축적 더 나아가 엔지니어링까지 할 계획으로 하루에 전 사원을 대상으로 2~3시간씩

OJT교육을 시켰다.

그 반지 사건 이후로 나는 항상 OJT 시간만 되면 과장님님의 Tacket이 되곤 했다.

문제를 내어 놓고 풀어라는 거다.

무슨 대학도 아니고

그러나 나는 학교에서도 못 배운 실전 교육을 월급받아가며 하니 감사해 하였고 내 실력을 키울 기회로 만들었다.


내 실력도 키워야겠지만 과장님의 Tacket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과장님이 소유하고 있는 책을 구입하여 예습을

해가기로 하고 과장님아 가지고 있는 참고서를 몰래 보고 서점에 가서 그 책을 구입하여 퇴근 후 공부하였다.

한번은 그 과장님 골탕도 좀 먹이고 나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다는 의미로 밤 12시에 사택으로 찾아갔다.


사모님이 잠옷차링으로 놀라시며 문을 열어 주었다.

과장님을 찾았다

피곤하였는지 자다가 일어난 듯하였다.

'과장님 이 문제를 풀다보니 모르겠습니다. 가르켜 주십시오" 하였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잠깐 앉으라 하시고

그 문제를 보시더니 사모님께 과일을 내오라 하곤 '그 과일 먹고 가서 좀 더 생각해봐라. 그래도 모르겠거든

다시 물어라.' 하셨다.

그 뒤부터는 Tacket에서 벗어나긴 하였다.


그 당시는 경쟁사에서 조금만 실력 있으면 굴비 역듯이 여러 명을 한꺼번에 데리고 가곤 하였다

회사에서 사원 유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고민한 결과는 대부분 사원이 미혼자이기 때문에 결혼만 하면

경쟁사 이동을 막을 것이라 생각하였는지 회사에서는 아무리 일아 바빠도 선보러 간다든지 하면 무조건 가게 배려 

해주었다.

사귀는 사람이 없으면 주선도 해주고 했다.

심지어 사모님들도 한 몫을 하여야 하든 시절이었다.

나 역시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당시는 토요일도 오후 6:00가 정상 퇴근하든 시절이었고 특별한 일 이 없으면 일요일 특근은 밥 먹듯이 하든

시절이었다.


어느듯 내 동료들도 하나,둘 결혼하기 시작했고 우리 부모님 역시 선을 보라고 독촉하신다.

내 나이 25살 때 부터 선을 보기 시작하여 꽉 찬 26살때 결혼을 하였다.

선을 15번 보고 14번째 아가씨가 지금 나의 아내이다.


나는 선을 볼 때 처음에는 몰랐는데 3번째 부터는 걱정이 앞선다.

결혼생활을 잘할수 있을 것인지?

어떤 상대가 나와 잘 맞을지?

어떤 상대가 진정한 나의 영원한 파트너가 될 것인지?

진정한 파트너의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Q1. 일정한 생활비(월급)을 주다가 못 주게 될 경우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Q2. 명함과 키를 내 놓고 명함은 사회적 신분이고 키는 안방 키다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Q3. 결혼은 왜 하려하느냐?


내가 생각한 상대는

A1. 같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서겠다(요즘말로 맞벌이를 하겠다는 의미)

A2. 당연히 아내가 될 자격으로는 안방 키를 선택하여야 한다. 사회적 신분은 언제든지 바뀔 수가 있기 때문에

     지금 좋은 회사다닌다고 선택했다가 그 회사를 그만두면 헤어질 것인가?

A3. 결혼의 의미는 상대방의 인생을 내가 책임지고 나의 인생을 상대방이 책임지며 서로 기대며 살아가기 위해서다

     라는 답을 들으면 결혼하려고 다짐하고 선을 보기 시작했다.


한 아가씨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사람같지 않고 오래 전 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처럼 푸근했다.

이야기를 해보니 그 녀도 그렇다고 했다.

서로 처음 만났지만 너무 좋았다 나와 그 녀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결혼하겠다 했다.

그런데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무슨 지리산 도사까지 몇 군데에 물어보니 아들없는

손자를 볼려면 그 녀와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안된다 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녀도 나만큼 안타까워 했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3가지 질문을 하니 내 주관적 생각으로는

아무 생각이 없는 아가씨 였든 것 같다.

왜 결혼하려느냐 질문에 자기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자기 혼자 남았기 때문이란다.

내 생각으로는 친구들이 죽으면 따라 죽을 것인가?

그런데 회사로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그 녀가 선보면서 내가 물었던 이야기를 그 녀 모친에게 다 했단다.

그랬더니 그 녀의 모친은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면서 결혼 전에 교육을 시킬테니 결혼을 하자고 졸라된다 한다.

내가 결정적으로 그 녀를 싫다고 한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 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녀의 유산으로 중소기업 건설회사가 있는데 결혼을 하면

그 회사를 나에게 물려주신다는 것이다.

난 젊은 혈기에 '내 실력으로 일류 대기업에 입사까지 했는데 무슨 물건도 아니고 꼭 팔려가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더 못하겠다' 하고 그렇게 전해달라고 했다.

회사가 어려워 구조조정거나 힘들 때는 가끔 그 녀 생각도 나기도 했다.


지금 아내는 선보는데 2시간이나 늦게 나왔다.

내 생각으로는 선 볼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녀가 들어올 때 나는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뛰쳐 나오려 하는데

아버지가 잡는다 정색을하면서..

늦게 올 때는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며...

솔직히 보고 싶지도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더구나 사전에 미대출신이라고 들었다.


내 이모중 한 명이 나와 나이가 같고 미대 재학 중에 가끔 만나보면 술도 나보다 잘 먹고 담배도 피우길래

너는 여자가 되어서 남자보다 술도 잘먹고 담배를 피우느냐 하였더니 예술을 해서 그런단다.

요즘 시절에는 여자들이 술, 담배를 하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월이지만 70년도는 손가락받는 시절이었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둘이서 이야기 하라고 나가라 한다.

선보러 온 그녀의 머리는 파마를 해서 보글보글 뽁았고,

노랑색 바지에 흰색 브라우스 바깥으로 노랑색 조끼를 입고,

얼굴은 너무 작아 외계인처럼 보였다.

밖으로 나오니 마침 비가 와서 그 녀에게 우산을 바쳐주었더니 홱 뿌리치며 저만치 떨어져서 자신의 우산을 편다.

'그래 나도 너한테는 관심 없어 흥!' 하고

일부러 학창시절 자주갔던 시끄러운 음악다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차를 시킬려고 물어 봤다 '차 한잔 하시겠냐"고

역시나 그 녀도 '나를 어떻게 알고 이런 곳에 데려 왔냐'는 식으로 얼굴아 벌겋게 되어 흘겨본다.

그래서 차도 안시키고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네요 그냥 갑시다' 하고 나왔다.

그런데 좀 걷다보니 뒤통수가 엄청 따갑다.

뒤를 돌아 보니 그 녀가 망부석처럼 서서 한참동안 계속 흘겨보고 있다.

중매해준 사람을 생각해서 다시 돌아가 '그럼 호텔 커피 숖으로 가겠냐'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떡인다.

그래서 다시 그 주변에서 제일 유명한 호텔 커피숖으로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미대 여학생들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 녀의 살짝 웃는 모습에서 입이 너무 예뻤다.

그리고 나와서 서로 인사를 하는데 나는 그냥 꾸벅헀는데 그녀는 90도 폴더처럼 인사를 하기에 깜짝놀랐다.

그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

가정교육은 정말 잘 받았네 하는 생각이 또 한번 그 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두번째 만남에서 그 녀가 그런다

'보통 선보고 3번 만나면 결혼하나고 단정한다는데 난 아닙니다 어떻게 생판 모르는 사람을 3번 보고 자신의

인생을 맡길 수 잇습니까? 최소한 1년 이상은 만나봐야 아는 것 아닙니까?'라 한다.

내가 거꾸로 한방 맞은 것 같다.

이 정도 사고라면 내가 묻고자 한 3가지 질문은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몇 번을 헤어지고 몇 번을 다시 만나고....


그 와중에 장인어른 되실 분도 내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100점 만점에 40점을 주셨지만 결혼 날짜를 잡기 위해

장모님께서 물어보는 곳에 갔다 오시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그것도 트럭에 부딪혀서 너무 많이 다쳤다는 것이다.

속으로는 끝났구나 하고 포기하려다가 어찌되었던 나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싶어 토요일 오후 병원을 찾아갔다.

예상은 했지만 장인되실 분이 문 앞을 막으며 '너 때문에 우리 집사람이 이렇게 다쳤는데 어딜 감히오느냐"고

막아선다. '저 때문에 다쳤셨는데 얼굴만 보고 가겠습니다'라고 하니 더 강경하게 안된다고 밀어 내신다.

속으로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면 밀치고라도 들어가서 얼굴 한 번 뵙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뒤로 몇 발자욱

뒷걸음질 한다음 장인 되신분을 밀어 붙이고 병실 안으로 들어 갔더니 이모님되시는 분들이 6분인가 되셨는데 

결혼 찬성,반대가 반반으로 나뉜다.

한 부류는 버르장머리 없다 안된다.

한 부류는 용기가 있다 결혼하면 잘 살겠다.

덕분으로 매 주 병원에 병문안을 다닐 수 있었다.

마침 회사의 배려 덕분으로 매 주 병문안 다니니 주위 환자들이 '요즘 세상에 저런 사윗감아 어디 있느냐'고

칭찬을 많이 하셨나 보다.

덕분에 장모님에게 점수를 좀 많이 얻기도 했다.

결혼반지도 장모님께서 병원에 누워계실 때 실로 손가락을 재어 주시기도 하였다.


하루는 결혼혼수품 때문에 걱정을 하고 계셨다.

그 때 컬러 TV가 막 나오는 싯점이었기에 이것 저것 걱정을 많이 하신다.

나는 그 녀 한명만 있으면 둘이서 필요한 것은 우리 손으로 준비하겠다며 숟가락 몽둥이 하나만 준비해서

보내 주시면 된다 했다.

TV를 걱정하시기에 필요없다 했다.

그 당시 관계사인 전자회사에서 개별적으로 흑백 TV 몇 대씩 팔라고 강제 배당이 되었는데 한 대는 우리집에서

보고 한대는 친척 집에 주고 한번도 뜯지 않은 새TV가 있었다 비록 흑백이지만....

그것을 혼수 대용품으로 하기로 하였다.

집도 우리집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필요없다 했다.

우리 부모님은 좀 섭섭했는지 모르지만 난 그 녀가 내 곁에 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한 번은 그 녀와 함께 양산 통도사로 놀러갔다. 가는 도중에 그 녀의 발목이 삐끗하여 좀 주물러 주었지만

불편한 모양이다.

그 날 따라 경봉스님께서 나오신다 하여 친견하기 위하여 많은 불교 신도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고 그 녀가 점심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길래 무심코 경봉스님 친견 후 먹자고 했더니

그럼 너무 늦다고 있는 자리에서 잠깐 기다리라한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보인다.

친견 시간은 다가 오는데

바윗돌에 올라서서 목을 쭈욱 빼고 보니 다리를 약간 절면서 양 손에 무엇을 들고 오고 있다.

그 때는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려고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그리곤 좀 있다 옆으로 와서 요기를 좀 하자 한다.

그 때 나는 그 녀에 게 나의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꼭 그 녀와

결혼하여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우리 부모님 또한 장인, 장모 되실분을 엄청 설득하였듣 것 같다.

자신들의 욕심과 주변의 눈총 때문에 결혼 전에 약속했던 말은 전부 안지켰지만....

그것도 결혼 후 분가 후 알았다.  


결국은 설날 며칠 앞두고 결혼을 밀어 부쳤다.

그렇게 어렵게 결혼을 하였다

그것이 지금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제 2의 인생의 첫 단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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