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그래도 취업 운은 좋았다

허공을 걷는 길 2016. 8. 27. 08:41

제대 후 집우로 돌아 오니 집은 그리 편하지 못하다.

제대 후 집에서 일주일 쉰 뒤 학교로 올라갔다. 취업정보를 얻기 위해...


학과장이 친구인 000와 나를 서울에 있는 보험회사로 면접을 보로 가라한다.

그 회사에서 면접 볼 때, 영어와 전공을 집중적으로 물어 본다 한다.

1명을 뽑는데 2명을 추천해서 보내라 했다 한다.

나는 제대한지 일주일 만에 면접보기 위해 약간의 준비를 하여야 하나 너무 시간이 없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 역시 자신이 없다고 안간다 한다.

그래서 나도 그럼 안가겠다 했다.

그러다 어느날 친구 집에 전화하였더니 면접보러 서울갔다 한다.

좀 어이도 없었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약혼자도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집에서 매일 신문을 보고 구인광고에 계속 원서를 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00설계사무소로 가보라 한다.

마침 집 근처라 얼른 갔더니 소장님이 내일부터 출근하라하신다.

원래 건축설계사무소는 1년 이전까지는 Project를 맡기지 않는다.

선배들의 연필을 깎아주거나 부분 도면을 그린다거나 한다.

그런데 소장님이 나를 잘 보셨는지 바로 Project를 주신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사람들의 동선과 나름 대로 편리한 집을 설계하였다.

그러나 집주인은 성질을 버럭 내면서 방하나,화장실 하나, 부엌하나 이렇게 방을 배치해 달라한다.

전세를 주기 위해서란다.

나는 그 때만해도 너무 젊고 건축의 기본 정신을 맞추어 설계하였기에 나는 그런 집은 설계를 못하겠다 했다.

그러나 소장님은 거꾸로 나를 달래주신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여러가지 이기 때문에 건축의 기본과 예술 감각은 필요한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지

월세 또는 전세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리가 멀다 하신다.

그래서 첫 Project를 이렇게 씁쓸하게 마무리 지었다.

두번쩨 Project는 건물 용도 변경하는 설계였다.

무사히 마무리 하니 세번째 Project를 소장님의 친척이 미국 LA에서 거부가 되어 한국이 생각나서 대문을

한식으로 짓고 싶다고 설계해달라 했다.

한식구조는 어떻다 하는 것은 알아도 설계는 너무 까다로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 카메라를 주시면서 경주에 가서 사진을 찍어와서 보고 설계하라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겨우 2개의 Project를 끝내고 이런 Project를 수행할 수 없어 선배들에게 양보하였다.

겨우 2달만에....


취업원서 내고 공무원 시험도 응시하여 갑자기 건설회사,교육청 건축직 공무원,SS중공업에서 합격하였다고 통보가 왔다.

건설회사는 출퇴근 시간이 썩 내키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님 말씀이 중소기업 건설회사이기에 특별하게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은게 아니고 출근 시간은 해가 뜨기 전,

퇴근 시간은 해가 지고 나서란다. 

그만 두겠다 했다.


공무원은 발령지가 함안이란다.

그 당시만 해도 아주 촌이라 그곳에서 생활하려니 막막했지만 연수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창원 SS중공업은 국내 일류 대기업이었다.

면접시험 때 이사님께서 묻는다 '우리회사는 건강이 최우선이다. 그만큼 일이 많기 때문에 힘이들텐데 견뎌 낼 수 있느냐?'

라고 물으신다.

군 근무시절 유격훈려나 받은 일, 육군범수단에서 고문 받은 일들을 이야기 하였더니 '그럼 건강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가는데

있어 정직하게 살아갈 조건을 다 갖추었으니 합격!' 하셨다.

그리고 입문교육을 받다보니 그곳에 내가 설게하여야 하는 구조물은 건축물도 있지만 대부분 철구조물로 건설현장에서 사용하는

뱃쳐플랜트, 콘베이어 등 좀 생소한 부분이라 인사과장에게 물엇다.

'이 부서는 건축과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데 왜 건축과 출신을 채용하였는지요.?' 하고 질문을 하니 그 부서 과장도

건축학출신이고 건축학과 출신도 몇명이 있다 하였다.

그러다 전문대학 동창을 만나 무슨 설계 하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배운 건축구조물은 아니지만 철구조물이라 재미있다 한다.

마음 속으로는 그래도 건축을 해야지 하면서 돌아가면 공무원을 하려고 다짐하였다.

그런데 입문교육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여비라 면서 얼마씩 봉투에 넣어주고 통근버스를 이용해 시외버스터미널 까지 태워 준다.

역시 대기업이라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돌아와서 아버지에게 공무원을 하여야겠다 하였더니 임용포기원을 보냈다한다.

아버지가 친척들에게 꽤나 자랑하였나 보다. 아버지가 제일 기대는 외할아버지에게 물으니 널푼수없는 공무원보다 

돈 많은 SS 중공업이 더 좋다고 그리고 가라 하셔서 임용포기원을 보냈다 한다.


건축설계사무소에 가서 소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철골구조를 더 배우기 위해 SS중공업으로 간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 때 소장님 말씀은 그 회사에서 길게는 5년만 있다가 다시 건축설계 사무소로 와서 경력을 채워 건축사로서의 길을

가라하셨다.

결과는 돈 때문에 그 대기업에서 정년퇴직까지 하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소장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당시 건축설계 사무소 월급은 3만원, 대기업월급은 15만원

그러나 설계 사무소 근무시간은 09:00~18:00, SS중공업은 07:00~22:00가 기본 이었다.

 

정년없는 건축사 좀더 공부하여 건축기술사를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공무원은 임용포기원을 한번 내면 공무원 시험에 5년동안 응시가 안되던 시절

그 때가 1978년

그래도 나의 학력과 그런 스팩으로 그런 대기업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요즘 젊은이에게는 꿈같은 이야기 일 수 밖


참으로 행운으 가져왔던 1978년도 였다

나의 60세 삶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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