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건 뭡니까?
이게 신에게 이르는 길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게 유일한 길이라고 하던데요.
나는 고통으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고통으로 보는 사람은,
누구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고통은 인간 체험 중에서 불필요한 측면이다.
그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어리석고 불편한 측면이다.
또 그것은 너희 건강에 해롭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고통이 존재하는 겁니까?
왜 당신은, 당신이 신이라면서, 그리고 그것을 그토록 싫어한다면서
그걸 끝장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나는 그것을 끝장냈다.
다만 너희가 내가 준,
고통을 끝장낼 수 있는 도구들을 사용하길 거부할 뿐이다.
이제 너도 아다시피,
고통은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관련이 있는 것은 사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일어나는 건 그냥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그것에 대해 너희가 어떻게 느끼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사건에 대응하고 반응할 때,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아니 사실은 없앨 수 있는 도구들을 너희에게 줬으나,
너희는 그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왜 사건들을 없애지는 않으시는 겁니까?
아주 좋은 제안이다.
그런데 불행이도 나는 사건들을 지배할 힘이 전혀 없다.
당신이 사건들을 지배할 힘이 없다구요?
물론 아니다.
사건이란 건 너희가 선택해서 만들어낸
시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따라서 나는 그 선택들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사건들을 없앤다면, 내가 너희를 창조한 이유 자체를 없애는 것이 되리라.
이런 얘기는 앞에서 이미 다 했다.
너희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사건들도 있고,
별 의식없이 스스로 불러들인 사건들도 있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들을 "운명"의 탓으로 돌린다.
너희가 이 범주 속에 던져넣는 것들 중에는 대형 자연재해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운명fate"조차도
"세상 모든 곳의 모든 생각들에서 From All Thoughts Everywhere"의
머릿글자들로 된 말일 수 있다.
달리 말해 이 행성의 의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 의식"이요.
바로 그거다.
정확히 그 말이다.
이 세상이 시장바구니 속의 지옥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태계가 죽어가고,
우리 행성은 지구물리학적인 대형 재난들을 당하고 있다고요.
지진, 화산폭발, 어쩌면 지구의 축이 옮아가는 재앙까지 일어날 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집단의식으로 그 모든 걸 바꿀 수 있다,
우리의 생각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진다.
세계 곳곳에서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살리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너희는 지구를 구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이미 지구는 너무 많은 피해를, 너무 오랫동안 입어왔다.
그러자면 마음가짐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구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이 멸망하는 걸 보게 될 거란 말씀인가요?
나는 물질우주의 법칙들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명확하게 만들었다.
우주에는 내가 너희 과학자들, 즉 물리학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주었고,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너희 세상의 지도자들에게 설명해주었던 인과법칙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그런 법칙들에 대해 새삼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고통의 문제로 돌아가기로 하죠.
우리는 고통이 좋은 것이라는 관념을 어디서 얻었을까요?
성자(聖者)들은 "말없이 고통을 겪는다"는 생각은요?
성자들은
"말없이 고통을 겪기"는 하나,
그렇다고 고통이 좋은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깨달은 사람이 되려는 이들은 고통이 신의 길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이 신의 길에 관해 배우고 기억할 만한 어떤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확실한 표식임을 알기에 말없이 고통을 겪는다.
참된 선각자는
결코 말없이 고통받지 않는다.
그냥 불평없이 고통받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참된 선각자가 불평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고통을 겪는 게 아니라,
소위 참을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그냥 체험할 뿐이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선각자들은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말이 어떤 힘을 갖는지 명확히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에 관해서는 그저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택했기 때문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현실이 된다.
선각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선각자는 어떤 것을 현실로 만들지 스스로 선택한다.
너희들도 이따금 이렇게 해왔다.
너희 중에 두통이 사라지게 해보지 않은 사람이나,
치과 가는 고통을 줄여보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렇게 이루어졌다.
참된 선각자는
이와 똑같은 결정을
단지 더 큰 일들에 대해서 내릴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째서 고통을 겪는 거죠?
게다가 고통의 가능성까지 존재하는 건 왜입니까?
내가 이미 설명한 것처럼
너희는 자기 아닌 것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자신을 알 수도 없고 자신이 될 수도 없다.
저는 아직도 우리가
고통은 좋은 것이란 관념을 왜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질문을 놓치지 않다니 슬기롭구나.
침묵하는 고통과 관련된 원래 지혜는 너무 심하게 왜곡된 나머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은 좋은 것이고
기쁨은 나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몇몇 종교들은 실제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암에 걸린 사람이 그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않으면,
그를 성자라 규정하지만,
(충격적인 화제를 택해보자)
화끈한 성행위를 하고 그 사실을
남들에게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다니는 여자는 죄인이라 규정한다.
맙소사, 정말 충격적인 화제로군요.
게다가 당신은 주격대명사까지 슬그머니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꿨군요.
그것은 강조하고자 함입니까?
너희의 편견을 보여주려고.
너희는 여자들이 화끈한 성관계를 즐긴다는 생각같은 건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다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너희는
여자가 거리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사랑을 나누는 걸 보느니,
차라리 남자가 전쟁터에서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죽어가는 걸 보고 싶어할 것이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요?
나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는 온갖 판단을 다 내린다.
그래서 나는 바로
너희의 판단이 너희가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막고,
바로 너희의 기대가 너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결합되면
너희는 불편해지고dis-ease(즉 병들고 - 옮긴이),
거기에서 너희의 고통이 시작된다.
당신이 말하는 게 진실이라는 걸 제가 어떻게 알죠?
이것이 제 지나친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
신의 말씀이기까지 하다는 걸 어떻게 알죠?
너는 전에도 그렇게 물었다.
내 대답은 그때와 같다.
그것이 어떻게 다른가?
설사 내가 말한 모든 것이 다 "틀렸다"해도,
너는 이보다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겠느냐?
아뇨.
그렇다면
"틀린 건" 옳은 것이고 "옳은 건" 틀린 것이다!
하지만 네 딜레마에서 벗어나게 해주마.
내가 말하는 어떤 것도 믿지 마라.
다만 내 말대로 살아보라.
내 말을 체험해보라.
그러고 나서
네가 짜고 싶은 다른 틀,
어떤 틀이든 좋으니 그 틀에 따라 살아라.
그리고 그 다음엔
네 진리를 찾기 위해
네 체험을 면밀히 살펴보라.
만일 네가
정말로 용기를 지녔다면
어느 날이고 너는
사랑을 전쟁보다 더 좋게 여기는 세상을 체험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너는 크게 기뻐하리라.
[Conversation with God book1]
너희가 구원받을 길은
남들의 행동action이 아니라,
자신의 반응re-action 속에 있다!
다른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하지 않는지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면
넌 덫에 걸린 거야.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건 상관없이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넌 꿈속에서나 맛볼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현실 세계에서도 누릴 수 있어.
네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냐에 따라
네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거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하지마.
단지 곧 있으면 이 고통이 사라지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만 생각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생각을 찾아서
계속 그 생각만 하도록 해.
다른 나쁜 생각이 네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더라도
잠시 동안 긴장을 풀고 그 생각을 떨쳐버려.
그리고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생각에 정신을 집중해.
그런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라고.
최선을 다해 행복한 결말만을 상상하는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너를 도와줄지,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하지 마.
단지 네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왜 원하는지에 정신을 집중해.
무엇보다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노력해야 돼.
그러면 모든 일이 잘될 거야.
걱정을 하면 행복한 결말이 오지 않아.
걱정과 행복은 정반대의 전파를 내보내거든.
기억나니?
고통의 사슬에 얽혀 있으면서
동시에 행복의 수도꼭지에 연결될 수는 없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원치 않는 상황을 보고 있을 때 네 기분이 나빠지면,
그건 네가 수도꼭지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소리야.
너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나눠줄 수 없어.
너 자신을 너무 엄격하게 다루지 마.
어떤 식으로든 원치 않는 상황과 맞부딪치면
누구나 강한 감정을 느끼게 돼.
전파의 성질이나 끌림의 종류를 결정하는 건
네가 맨 처음 느낀 감정이 아니야.
맨 처음 느낀 감정이 지나간 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해.
잘 기억해봐,
네 주변의 상황이 네 감정을 통제하기 시작하면
넌 항상 덫에 걸리게 돼.
네 느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
그래야 네 생각도 통제하게 되고,
결국 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
네가 원하지 않는 상황을 밀어내려고 하기보다
네가 원하는 상황을 느긋하게 생각해 봐.
물론 말도 방향을 일러주지만,
느낌이야말로 네가 받아들이는지 거부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안내자야.
잊지말고 꼭 내 말대로 해봐.
네가 싫다고 말하면
넌 여전히 원하지 않는 상황을 밀어내고 있는 거야.
네가 원하는 상황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그렇게만 하면 모든 상황이 점점 좋아질 거야.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갈거야!
All I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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