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아닌 생각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영성 지능

허공을 걷는 길 2008. 6. 28. 07:23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영성 지능

영성 지수(SQ; Spiritual Quotient Intelligence)는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의식 혁명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개념으로 IQ, EQ에 이어 정립된 인간의 지능에 대한 새로운 척도입니다.

 

각 지능 지수의 비교

IQ는 선형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말합니다.

x이면 y이다’, 혹은 ‘2+2=4’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 형식 논리학과 산술에 의해 유도된 사고 모델에 의해 측정된 지능 지수입니다. IQ는 합리적, 논리적인 정보 처리 능력으로 쉽게 말해 컴퓨터의 계산 방식과 같은 구조를 가집니다.

 

순차적 사고와 IQ의 강점은 엄밀하고 정확하며 믿을만하다는 것입니다. 뉴턴주의 과학을 지탱하는 사고와 마찬가지로 선형적이고 결정론적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고에는 뉘앙스나 모호성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IQ는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기능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서거나 예기치 않는 문제를 다룰 때, 특히 그 문제의 의미를 찾는 등의 활동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EQ는 “마음”과 “몸”의 사고 능력으로 연합적이고 통합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입니다. 병렬적이고 전의식적인 두뇌의 활동으로 정서와 관계가 깊습니다. 정서는 이성보다 명확성에서는 떨어지지만 광범위하고 넓은 영역을 망라합니다. EQ의 강점은 그것이 경험을 활용하는 사고라는 점과 실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IQ에서 용납되지 않는 뉘앙스나 모호성을 다룰 수 있는 종류의 사고이며 해보지 않는 경험을 할 때 자기 길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예로 든다면, 자전거의 원리(세차력, 관성의 법칙 등)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IQ의 기능입니다. 하지만 그 원리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전거를 탈 수는 없습니다. 처음 자전거 타기를 배울 때는 신체 각 부분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의식하느라 조절이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계속함으로써 손발과 뇌의 협조 관계가 형성되어 결국 머리가 아닌 몸으로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됩니다.

 

IQ EQ는 일반적으로 상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IQ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EQ가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사고는 서로 상호 작용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둑과 같은 게임을 들 수 있습니다.

바둑에서 정확한 수읽기는 IQ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수읽기가 서툰 사람은 IQ에만 의지하여 모든 가능한 수를 분석하기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됩니다. 하지만 고수의 경우 경험을 통해 각 상황에서 좋은 결과가 예상되는 수만 분석합니다. 분석과 판단의 과정에서 IQ EQ는 상호 협력하게 됩니다.

SQ는 앞의 두 지능을 통합하는 제3의 지능으로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의미부여적, 맥락적, 변형적 지능입니다. 주로 “왜?” 또는 “의미”와 연관된 질문과 관련된 지능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합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통합적 사고의 능력입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운동 역학 실험을 통해 영성 지능을 수치로 나타내었습니다. , 어떤 특정한 느낌, 태도, 사물, 심지어 역사적 인물에 대한 근육의 반응 강도를 측정하여 이를 수치화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전까지 종교적, 철학적, 심리학적 관점에서만 접근했던 영성을 과학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연구라 할 수 있습니다.

 

호킨스 박사는 의식의 지도를 통해 인간 의식의 수준을 수치심, 죄의식에서부터 깨달음 등으로 나누고 각 단계를 수치화했습니다.

 

의식의 지도

 

신의 관점

세속의 관점

수준

영성지수

감정

과정

자아 

항상 존재하는

하나 

사랑 

현명함 

인정 많은

감화 주는

능력이 있는

용납하는 

무관심한 

복수에 찬

부정하는 

징벌의 

경멸의 

비난하는 

원한을 품음

멸시하는

존재 

완전한 

전부 갖춘

자비로운 

의미가 있는

화목한 

희망에 찬

만족한 

가능한 

요구가 많은

적대의 

실망하는 

무서운 

비극의 

절망의 

사악한 

비참한

깨달음 

평화 

기쁨 

사랑 

이성 

포용 

자발성 

중용 

용기 

자존심 

분노 

욕정 

두려운 

슬픔 

무기력 

죄의식 

수치심

700-1000 

600 

540 

500 

400 

350 

310 

250 

200 

175 

150 

125 

100 

75 

50 

30 

20

언어이전 

축복 

고요함 

존경 

이해 

용서 

낙관 

신뢰 

긍정 

경멸 

미움 

갈망 

근심 

후회 

절망 

비난 

굴욕

순수의식

자각

거룩함

계시

추상

초월

의향

해방

힘을 주는

과정

공격

구속

물러남

낙담

포기

파괴

제거

 

 

 

수치를 볼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용기(200) 미만의 에너지는 근육의 힘을 약화시키는 부정적인 에너지이며 200이상이 근육을 강화시키는 긍정적인 강한 에너지라는 점입니다.

 

또한 영성 지수에서의 수치는 의식의 에너지 크기를 나타냅니다. 양자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듯 모든 존재들은 물질일 뿐 아니라 에너지의 파동입니다. 여기 나 있음의 에너지가 이 곳 나 되어감의 현상계에 나타나는 것이 물질입니다.

 

의식 수준의 수치는 산술적인 수치가 아니라 대수적입니다. 200의 에너지는 100 2배가 아니라 100 10의 제곱만큼 곱한 수, 100 100승입니다.

 

의식 수준의 최정점인 1000에 도달한 사람으로 호킨스 박사는 3대 성인인 예수님, 부처님, 크리슈나를 꼽고 있습니다. 에너지의 크기가 산술적이 아니라 대수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영성지수 1000의 한 개인(Avarta;아바타르)은 전 인구의 부정적 에너지를 상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류를 죄에서 구원했다는 사실은 의식 수준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에너지가 전 인류의 죄의식, 수치심 같은 부정적 에너지를 상쇄했다는 뜻입니다.

 

각 수준별로 에너지의 크기를 보면

7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7,000만 명을 상쇄합니다.

6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1,000만 명을 상쇄합니다.

5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75만 명을 상쇄합니다.

4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40만 명을 상쇄합니다.

3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9만 명을 상쇄합니다.

700 12명은 한 분의 아바타르와 같습니다.(반대로 이야기하면 현재 지구에는 700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12명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지구상 인구의 15%가 분기점인 200 이상의 의식 수준에 속하지만, 나머지 85%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상쇄시킵니다.

각 종교들의 의식 수준을 보면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수준이 1,000이었지만 지속적으로 떨어져 십자군 시대에 현재의 수준인 498로 되었습니다. 가톨릭, 성공회, 크리스천 사이언스 등이 500대 중에서 높은 수준을 보이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경우 125로 측정됩니다.

 

불교 역시 부처의 가르침이 1,000이었지만 현재는 소승불교 850, 대승불교 950, 선불교 600으로 측정됩니다.

힌두교는 크리슈나의 가르침이 1,000이었지만 현재는 850으로 측정됩니다.

 

유태교는 아브라함의 가르침이 985, 모세 시대가 770, 현대 유태교는 499, 구약 성경은 475로 측정됩니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의 의식수준이 540, 코란은 570입니다. 현대의 호전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믿는 가르침의 수준은 130에 불과합니다.

현재의 지구의식 수준의 평균은 불과 몇 십년 전까지 200을 넘지 못했으나 최근 204에 도달해 분기점은 넘어섰다고 합니다.

 

한 개인의 경우 특별한 깨달음이 없는 경우 일생동안 5정도의 의식 수준 상승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험이나 깨달음을 얻게 되면 수백 이상의 의식 수준 상승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깨어나기에서 경험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의식 수준의 수직 상승입니다. 깨어나기의 에너지는 수련생들을 강하게 磁化시킵니다. 높은 에너지의 끌개장이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끌어올립니다.

 

SQ는 스포츠, 교육, 종교,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 가능합니다. 제가 영성지수에 대한 설명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 이유는 앞으로 제가 할 교육에 관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영성지수라는 개념에 기초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입시 정책은 수시로 변하고 성적 지상주의의 왜곡된 교육열은 아이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IQ, EQ 등이 강조되고 수조원의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아이들의 내면에 대한 이해는 부족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의식 수준이 얼마인지에 대한 성찰은 없이 뉴턴 시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으로 아이들에게 지식만을 억지로 주입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의 교육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진정한 교육이 어때야 할지를 영성의 관점에서 풀어보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 반기를 든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현재 교육 시스템에서 낙오되거나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더 좋은 성적을 얻고 더 현실적인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나 있음의 명확한 인식이 이 곳 나되어감의 전제가 되듯...

 

 

 

출처 : 네이버카페, SQ학습법